장(醬)은 한국인의 식문화 깊숙한 곳에서 생명처럼 지켜져 내려온 음식입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다양한 발효 장류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곡물과 소금, 그리고 시간을 재료 삼아 완성되는 '살아 있는 음식'이었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소금이 귀해 장을 담그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와 갯벌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자원을 이용했습니다.
바로 조개껍질이었습니다.
조개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장 담그기에 활용한 전통 기술은, 환경과 자원의 한계 속에서도 발효 문화를 지켜낸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① 갯벌 조개껍질 가루가 전통 발효 장에 어떻게 쓰였는지,
② 조개껍질이 발효에 과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③ 현대에서 이 전통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까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조개껍질 가루를 이용한 옛 발효 장법: 잊힌 기술을 되살리다
조선 시대 기록과 구전 민속을 살펴보면, 소금이 부족하거나 고가였던 시절, 일부 바닷가 마을에서는 조개껍질을 활용해 장을 담갔다는 사례가 발견됩니다.
조개껍질을 활용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 조개껍질은 쉽게 구할 수 있었고,
- 물에 끓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면 일정한 염분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며,
- 발효 환경을 안정시키는 데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소금 대신 '갯벌 흙'이나 '조개껍질 부스러기'를 모아 장을 담갔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실제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갯벌에서 조개껍질을 수거하여 햇볕에 잘 말린 후
- 깨끗이 씻고, 가루로 곱게 빻은 다음
- 메주를 소금물 대신 이 조개껍질 가루가 섞인 물에 담가 발효시킨 것.
당시 사람들은 정확한 화학적 지식은 없었지만, 경험적으로 조개껍질이 장 발효를 안정시키고 맛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활용했던 것입니다.
2. 조개껍질 가루의 발효학적 가치: 자연이 전해준 발효 과학
현대 과학은 조개껍질 가루가 발효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pH 조절 작용
조개껍질의 주성분인 탄산칼슘(CaCO₃)은 약알칼리성입니다.
장류 발효 과정에서는 메주의 분해 과정에서 산이 발생하면서 pH가 낮아지는데,
조개껍질 가루가 완충 작용을 하여 발효를 안정화시킵니다.
- 지나친 산성화 방지
- 유익균(유산균, 효모) 생장 최적화
- 부패균(혐기성 세균) 억제
2) 미네랄 공급 및 맛의 향상
조개껍질에는 칼슘 외에도 마그네슘, 칼륨 등 미량 무기물이 풍부합니다.
이들은 발효 미생물의 성장 촉진과 함께 장류의 맛을 복합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특히 칼슘은 쓴맛을 부드럽게 줄여주고, 장류의 구수하고 고소한 풍미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3) 보존성 강화
조개껍질 가루는 자연 항균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조개껍질 가루를 첨가한 장은 부패에 강하고, 저장성이 좋아 오랫동안 풍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현대에 되살리는 갯벌 조개껍질 발효 장법
전통 장 담그기에 조개껍질 가루를 활용하는 기술은 현대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유의미합니다.
현대 응용 방향
1) 저염 발효 장 개발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 식문화에서는 염분을 줄이면서도 깊은 맛을 유지하는 발효식품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조개껍질 가루를 활용하면 적은 소금양으로도 발효 안정성과 풍미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2) 천연 미네랄 강화 제품
조개껍질을 통해 얻은 천연 칼슘, 마그네슘 성분은 별도의 첨가제 없이 장류의 기능성과 영양가를 자연스럽게 높여줍니다.
3) 지속가능한 식문화 복원
조개껍질은 어촌 폐기물이 되기 쉬운 자원입니다.
이를 발효에 활용하면 자원 순환, 친환경 생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형 갯벌 장 제조 실험 레시피
- 발효용 전통 메주 5 덩이
- 천일염 1.2kg
- 정제수 13L
- 깨끗이 세척, 살균한 조개껍질 가루 70g
- 메주를 물에 씻고 건조한 후 옹기 항아리에 담습니다.
- 소금물에 조개껍질 가루를 섞어 잘 풀어줍니다.
- 메주에 소금물을 붓고 항아리 입구를 천으로 덮어 바람이 통하게 합니다.
- 3개월 숙성 후 메주를 건져내어 된장, 간장으로 분리하여 추가 숙성합니다.
➡ 조개껍질 농도를 조절해 가며 다양한 풍미 실험도 가능합니다.
정리: 조개껍질 장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갯벌 조개껍질 가루를 이용한 옛 발효 장 기술은,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자연을 활용해 생존과 문화를 이어온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입니다.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의 입맛
- 친환경 지속 가능한 생산
- 발효 과학과 전통 기술의 융합
을 모두 아우르는 중요한 식문화 복원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다의 조개껍질, 땅의 메주, 하늘의 바람이 만나
천천히 만들어내는 한 항아리의 깊은 맛.
그 안에는 인간과 자연이 긴 시간 동안 쌓아온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아름다운 대화를 다시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