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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식물성 자원, 고사리 뿌리로 되살리는 고대 수프 복원

by Amelia7 2025. 4. 29.

고사리 뿌리를 이용한 고대 수프 복원
고사리

고사리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봄나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줄기 위쪽 말고, 땅속에 숨겨진 고사리 뿌리가 과거에는 죽, 수프, 떡, 묵 등으로 쓰인 생존식이자 영양 자원이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고사리 뿌리 전분은 탄수화물 자원이 부족하던 시기,
곡물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하게 쓰였으며,
정제와 침출을 거쳐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며 고대 식문화 속 탄력적 대체 식재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 고사리 뿌리를 식재료로 사용한 역사와 민속 식문화,
  • 뿌리 성분과 전처리 기술의 과학적 배경,
  • 이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복원 수프 레시피까지

단순한 전통 음식이 아닌, 잊힌 식물 자원의 현재적 가치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1. 고사리 뿌리, 고대인의 생존과 지혜가 담긴 식량 자원

1-1. 기록 속 고사리 뿌리의 쓰임

고사리 뿌리는 조선 후기 및 그 이전부터 민간 식재료와 약재로 동시에 인식되어 왔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산중 고사리를 캐어 뿌리를 말려 삶고 찧어 죽을 삼았다”는 기술이 나오며,
『동의보감』에서는 “고사리는 기를 내리고, 위를 다스리며, 속을 따뜻하게 한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 경북, 충북 등 산지와 분지에서 보릿고개 대체식, 약식, 환자식으로 뿌리 전분을 삶아 만든 죽 형태의 음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 민속 증언:
“가을에 뿌리를 캐서 가마솥에 삶아 찧고, 물에 여러 번 우려낸 다음 묵처럼 굳히거나 죽처럼 끓여 먹었지.
쌀이 없을 때 애들 밥 대신 먹이기도 했어.”
– 충북 단양 80대 여성 구술 채록 (2017, 지역향토문화자료집)

1-2. ‘와라비코’ 문화: 일본과의 유사 식문화

고사리 뿌리를 갈아 만든 전분은 일본에서도 ‘와라비코(蕨粉)’라는 이름으로 전통 떡과 젤리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와라비모치’라는 떡은 고사리 뿌리 전분 100%로 만들 경우 투명하고 쫄깃한 질감을 내며, 이는 전분의 미세구조와 점성에서 기인합니다.

이처럼 고사리 뿌리는 한반도와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자연에서 찾은 고탄수화물 자원으로 활용된 귀한 사례입니다.

2. 고사리 뿌리의 식재료화, 과학적 전처리와 영양학

2-1. 고사리 뿌리의 주요 성분

고사리 뿌리는 우리가 식용으로 아는 줄기와 달리, 전분질이 매우 풍부한 영양 덩어리입니다.
100g당 약 60~70g에 이르는 전분이 포함돼 있으며,
기타 생리활성 물질도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성분명 함량 및 기능
전분 60~70%, 고에너지 탄수화물 자원
식이섬유 장내 유익균 활성, 소화 도움
사포닌 항염, 항균, 간 보호 작용
폴리페놀 항산화, 면역 보조 기능
칼슘, 칼륨, 철분 뼈 건강, 혈압 조절, 빈혈 예방

고사리 뿌리 전분은 미립자 구조를 가지며, 가열 시 부드러운 점성을 띠어
죽, 묵, 수프 등에 매우 적합한 물성을 갖습니다.

2-2. 독성 제거와 정제의 기술

생고사리와 그 뿌리에는 소량의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생식은 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삶고, 우려내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 전통적인 정제 순서:

  1. 수확: 가을 또는 초겨울 뿌리 채취
  2. 삶기: 가마솥 또는 냄비에 1~2시간 삶기
  3. 찧기: 절구나 도구로 뿌리 으깨기
  4. 침출: 깨끗한 물에 12~24시간 침출 (3~4회 물 교환)
  5. 침전: 상층 제거 후, 하층 전분만 채취
  6. 건조: 햇볕에 수일간 말려 전분화

이 과정을 거치면 고사리 뿌리는 무취·무맛·무독의 고순도 전분으로 변하며,
현대적으로도 충분히 복원 가능한 조리 공정을 갖추게 됩니다.

3. 고사리 뿌리 수프 복원 실험: 전통에 과학을 더하다

3-1. 현대형 복원 레시피

> 재료 (2인분 기준)

  • 고사리 뿌리 전분 3큰술 (또는 20g)
  • 물 600ml
  • 표고버섯 채 썬 것 1/4컵
  • 마늘즙 1작은술
  • 들기름 1작은술
  • 소금 1/3작은술 (또는 솔잎 발효 소금)
  • 볶은 깨 약간, 실파 약간

> 조리법

  1. 냄비에 물, 표고버섯, 마늘즙을 넣고 중불로 끓인다
  2. 고사리 전분은 미리 찬물 3큰술에 풀어두었다가 천천히 붓는다
  3. 점성이 생길 때까지 7~10분간 저으며 가열한다
  4. 간을 맞춘 뒤 들기름, 깨, 실파를 뿌려 마무리한다

> 맛의 특징:
구수하고 약간 달콤하며, 풀향과 곡물 맛의 중간 느낌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감촉
포만감은 있으나 칼로리는 낮아 다이어트, 회복식, 비건식 모두에 적합

3-2. 수프로서의 현대적 응용 가능성

활용 분야 기대 효과
환자식, 요양식 부드럽고 자극이 없어 회복기 식사에 적합
곡물 알러지 대체식 밀·쌀에 민감한 이들을 위한 천연 전분식
비건 고영양 조리 동물성 없는 고탄수화물 기반 수프 완성
퓨전 한식 디저트 팥죽, 호박죽과 혼합 시 이색 수프 탄생 가능

정리: 뿌리에 담긴 시간, 식탁에 피어나다

고사리 뿌리로 끓인 수프는 단순히 옛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뿌리 식물이 가진 에너지와 생명력,
그걸 정제하고 조리하는 사람의 시간과 정성,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진 문화의 층위가 담긴 한 그릇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잊은 것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자연을 식량으로 전환하는 느림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고사리 뿌리를 꺼내 삶고, 찧고, 끓여 한 그릇의 수프로 만들 때
우리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미래의 건강 식문화 자립을 위한 씨앗을 다시 뿌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