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는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기술이지만, 결국 마음으로 기억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어떤 음식은, 첫 입을 베어무는 순간 그 나라의 거리, 공기, 삶까지 떠오르게 만들지요.
‘반쎄오(Bánh xèo)’라는 이름의 이 전병도 그렇습니다.
쌀가루 반죽을 얇게 펴 팬에 부치고, 그 위에 고기와 새우, 채소를 얹어 반으로 접어 바삭하게 익혀내는 이 요리는,
베트남 남부 지방에서는 일상처럼, 골목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 곁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베트남 현지 마을의 한 할머니에게 직접 배운 정통 반쎄오 레시피를 중심으로,
그 맛 속에 담긴 이야기까지 천천히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재료 하나에도, 조리 시간 하나에도 담긴 그분의 손맛과 철학, 그리고 제가 직접 따라 만들어본 반쎄오의 과정들을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문체로 기록해 봅니다.
바삭한 반죽, 부드러운 속재료, 향긋한 허브, 새콤달콤한 소스.
모든 요소가 어우러지는 ‘한 장의 음식’이 완성될 때,
우리는 집에서도 충분히 베트남을 맛볼 수 있습니다.
1. 쌀전병 위에 담긴 기억의 풍경
– 마을 한복판에서 시작된 인연
제가 처음 반쎄오라는 음식을 마주한 건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 차로 두 시간쯤 떨어진,
작은 강이 흐르는 미토(Mỹ Tho)의 한 마을이었습니다.
노란 석양이 깔린 시골 시장, 사람들은 장을 마치고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간.
그때 저는 마을 어귀에서 기름 냄새가 살짝 풍겨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습니다.
작은 파라솔 아래, 커다란 철판 하나를 두고 전을 부치던 한 할머니.
그분은 말이 거의 없으셨지만, 두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요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국자로 반죽을 떠 팬 위에 붓는 소리, 재료를 얹고 뚜껑을 덮는 리듬, 가장자리가 살짝 들릴 때 뒤집는 그 타이밍까지—
모든 동작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진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반쎄오 한 조각을 먹어봤고, 그 맛은 단순한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
그분의 하루, 그 마을의 오후, 그리고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식문화를 한 입에 담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여쭈었고, 며칠 뒤 다시 찾아가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 반쎄오의 매력은 ‘식감’에서 시작된다
– 바삭함과 촉촉함의 이중주
반쎄오라는 이름은 ‘지글지글 소리 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부터가 조리 과정의 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이 요리는 매우 감각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얇고 넓게 부친 쌀가루 반죽이 팬에서 지글지글 익을 때 나는 소리,
그 위에 고기와 새우, 숙주를 얹고 다시 반으로 접어 익혀내는 방식,
겉은 바삭하지만 안은 촉촉하고 속은 따뜻한
이렇게 여러 층의 식감이 공존하기에, 반쎄오는 단순히 ‘전’으로 표현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또한 반쎄오는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함께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음식입니다.
큰 반쎄오를 접시 한가운데 놓고, 사람들은 손으로 조금씩 떼어 상추에 싸고, 허브를 곁들이고,
느억맘이라는 소스에 푹 찍어 한 입.
그 한 입에 베트남의 저녁이, 함께 앉은 이들의 기분이 고스란히 녹아듭니다.
3. 할머니의 방식대로, 준비부터 차근차근
– 반은 재료 준비에서 결정된다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반쎄오는 반죽보다 준비가 더 중요해요. 미리 차분하게 준비해 두면 나머지는 저절로 돼요.”
그 말은 틀림없었습니다. 실제로 조리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하는 시간은 꽤나 길고 정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집에서 만들 때, ‘차분함’을 먼저 꺼내놓습니다.
🌾 반죽 준비
- 쌀가루 1컵 (시판용 가능)
- 물 1컵
- 코코넛 밀크 1/2컵
- 강황가루 1작은술
- 소금 한 꼬집
- 다진 파 약간
*팁: 반죽은 묽은 크레페 반죽 정도의 점도를 유지하며, 만들고 10분 이상 숙성시키면 좋습니다.
🍤 속 재료
- 얇게 썬 삼겹살 또는 앞다리살 100g
- 껍질 벗긴 새우 6~8마리
- 숙주나물 한 줌
- 채 썬 양파 1/4개
🌿 곁들임 재료
- 상추 또는 로메인
- 바질, 고수, 민트 등 허브
🧄 느억맘 소스
- 피시소스 2큰술
- 따뜻한 물 2큰술
- 설탕 1큰술
- 라임즙 또는 식초 2큰술
- 다진 마늘 1작은술
- 다진 고추 약간
4. 만드는 순간부터 리듬을 타야 한다
– 반쎄오는 타이밍의 음식이다
재료를 모두 준비했다면, 이제 진짜 요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반쎄오는 절대 ‘천천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달궈진 팬, 뜨거운 기름, 얇은 반죽— 이 세 가지가 만나면, 조리는 ‘순간의 리듬’이 됩니다.
🍳 조리 순서
- 팬을 센 불에 달군 후 식용유를 넉넉히 둘러 예열한다.
- 돼지고기를 먼저 팬에 얇게 깔고, 새우를 그 위에 올린다.
- 국자 한 국자 분량의 반죽을 팬에 붓고 얇게 펼친다.
- 뚜껑을 덮고 1~2분간 익힌다.
- 숙주와 양파를 중앙에 올린 후 다시 뚜껑을 덮는다.
- 노릇해지면 반으로 접고 1분간 더 익혀 바삭하게 마무리한다.
5. 먹는 방식까지 하나의 문화다
– 싸 먹고, 나누고, 웃고
반쎄오는 먹는 방식마저 음식의 일부입니다.
조리된 전병을 한 입 크기로 잘라 상추에 올리고 허브를 곁들인 뒤,
소스를 뿌리거나 찍어 먹으면 됩니다.
그 맛은 바삭함, 고소함, 새콤함, 향긋함이 어우러지는 경험입니다.
6. 어울리는 곁들임 – 베트남식 저녁 한 상
- 자스민차
- 연두부 + 땅콩 소스
-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등 계절 과일
- 얇은 쌀국수 약간
7. 마무리하며 – 요리는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
제가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와 반쎄오를 만들었던 며칠은,
그 어떤 미쉐린 레스토랑보다도 인상 깊고 따뜻한 기억이었습니다.
특별한 재료보다 중요한 건 손끝의 정성과, 사람들과 나누려는 마음이라는 걸 그분은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저녁, 반쎄오 한 장을 부쳐보세요.
지글지글 익어가는 그 소리에, 베트남의 따뜻한 저녁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